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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형·자오즈민 결혼, 수교보다 1년 빨랐던 진짜 이유

트렌드프레스 편집팀

탁구선수 안재형과 자오즈민 부부의 결혼 시점은 한중수교보다 앞섰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교조차 없던 시절 두 사람이 국경을 넘은 과정에는 지금의 국제결혼과는 다른 정치적 장벽이 있었습니다.

안재형·자오즈민 결혼, 수교보다 1년 빨랐던 진짜 이유
AI 생성 이미지 — 실제 현장 사진이 아닙니다

탁구 코트에서 만나 결혼식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탁구선수 안재형과 자오즈민 부부의 이야기가 SBS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시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어 조선비즈가 두 사람의 인터뷰를 보도하면서 관심이 한 번 더 커졌습니다.

꼬꼬무는 과거 사건을 패널들이 이야기 형식으로 다시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라, 이미 알려진 인물이라도 새로운 증언이 나오면 다시 화제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한국과 중국 탁구 국가대표로 활동하다 국제대회에서 마주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시절, 상대 진영 선수로 코트에 섰던 두 사람이 결혼까지 이른 겁니다.

결혼 시점은 1991년으로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국교를 맺은 건 그보다 뒤인 1992년 8월입니다.

국가 간 외교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이 먼저 국경을 넘어버린 셈입니다.

당시 두 사람 모두 소속팀과 협회를 통해서만 해외 대회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사적인 국제 접촉 자체가 쉽지 않은 시절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지금 다시 나오는 배경

이번 방송에서 새롭게 조명된 대목은 자오즈민의 아버지가 인민해방군 소속 장성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딸이 적대 관계였던 한국 선수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 입장에서는 이념과 체제를 동시에 거스르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이 결혼을 순수한 로맨스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결혼이 곧 국가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읽히던 시절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출연한 패널이 두 사람의 관계를 징그러울 정도라고 표현했다고 보도됐는데, 30년 넘게 이어진 관계의 밀도를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족사가 주기적으로 소환되는 또 다른 이유는 아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1991년생으로 알려진 안병훈은 현재 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프로 골프 선수입니다.

부모는 탁구, 아들은 골프로 종목은 다르지만, 국제 무대에서 이름을 알렸다는 공통점이 이 가족을 계속 화제의 중심에 두는 요인입니다.

탁구가 냉전기 국제 스포츠 중 유독 이런 사연을 만들어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세계선수권 같은 종목별 대회는 국교와 무관하게 국제탁구연맹 소속 국가라면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식 수교가 없는 나라의 선수들도 같은 체육관 안에서 자주 마주쳤습니다.

실제로 1971년 미국과 중국 탁구 대표팀의 교류는 이후 양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핑퐁외교라는 말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포츠가 외교보다 먼저 움직인 선례가 이미 있었던 셈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 사건을 숫자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중 핑퐁외교와 비교하면 한중 사이의 '탁구가 먼저, 외교가 나중'인 패턴은 약 20년 늦게 반복된 셈입니다.

다만 정확한 결혼식 날짜나 혼인신고 시점까지 특정한 자료는 아직 없어서, 수교와의 간극을 몇 개월 단위까지 딱 잘라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 언론에서 중국을 부르던 표현도 함께 짚어볼 만합니다. 정부가 중국을 '중공' 대신 '중국'으로 공식 표기하기 시작한 시점도 수교 전후로 맞물려 있습니다.

자주 헷갈리는 지점

첫 번째 오해는 이 결혼을 그냥 국경을 넘은 러브스토리 정도로만 소비하는 것입니다.

당시 두 나라 사이엔 국교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 기준의 국제결혼과는 법적 성격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비자나 국적 문제를 처리할 공식 창구 자체가 없던 상태였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상대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서류 한 장으로 끝날 일이, 당시에는 제3국을 거치거나 협회 차원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문제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번째 오해는 '중공'이라는 단어를 지금의 '중국'과 같은 말로 여기는 것입니다.

중공은 냉전기 한국 사회가 중국을 부르던 표현으로, 적대적 뉘앙스가 담긴 용어입니다. 이 표현이 방송 제목에 그대로 쓰인 것 자체가, 당시 두 나라 관계가 얼마나 멀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인 셈입니다.

나에게 닿는 지점

지금은 한중 국제결혼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결혼이민(F-6) 비자를 신청하고, 혼인신고와 재외동포 관련 절차를 밟으면 됩니다. 매년 적지 않은 수의 한중 커플이 이 절차를 거쳐 가정을 이룹니다.

34년 전에는 이런 절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국교가 없으니 영사 지원도, 표준화된 혼인 서류 절차도 없었던 셈입니다.

지금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통해 제도가 갖춰지기 전과 후의 차이를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서류 몇 장으로 끝나는 절차 뒤에, 한 세대 전에는 없었던 제도적 기반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결혼이민자나 다문화가정을 위한 상담은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비자나 국적 문제로 막막할 때 개인이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 창구가 지금은 마련돼 있다는 뜻입니다.

스포츠 교류가 외교의 물꼬를 트는 사례는 지금도 반복됩니다. 국가 간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 오히려 선수단이나 문화 교류가 먼저 오가는 경우를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부부의 사연이 그 원형에 가깝습니다.

정확한 혼인신고 날짜와 자오즈민의 국적 취득 경위는 아직 상세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추가 인터뷰나 자료가 나오면 이 부분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안재형·자오즈민 부부는 언제 결혼했나요?

방송과 보도에서는 결혼 시점을 1991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확한 혼인신고 날짜까지 특정한 공식 자료는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월과 일을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두 사람의 아들 안병훈은 어떤 선수인가요?

1991년생으로 알려진 안병훈은 PGA 투어에서 활동해온 프로 골프 선수로, 부모가 탁구로 이름을 알린 것과는 다른 종목에서 국제 무대 경력을 쌓아왔습니다.

한중수교 전에는 지금과 결혼 절차가 어떻게 달랐나요?

국교가 없는 상태에서는 영사 지원이나 표준화된 혼인 서류 절차가 없어, 지금 같은 결혼이민 비자 제도를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이 협회나 제3국을 통해 절차를 해결해야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기사는 공개된 공식 자료를 근거로 작성했으며, 초안 작성에 AI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발행 기준과 정정 절차는 편집·정정 방침에 있습니다. 금액·기한처럼 결정에 쓰이는 정보는 아래 출처에서 최종 확인해 주세요.

참고한 자료

안재형자오즈민한중수교꼬꼬무안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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