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천행챗 사건이 드러낸 마사회 통계의 구멍
40번 뛰어 1억4,675만원을 번 경주마가 퇴역 보름 만에 제주의 불법 도축장에서 발견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마사회의 '승용전환율' 지표가 검증 없는 자진신고에 불과하다는 의혹이 제기돼 감사원 공익감사까지 청구됐습니다.

천행챗은 어떻게 도축장에서 발견됐나
2021년생 경주마 '천행챗'은 2023년부터 지난 7월 11일까지 40차례 경주에 나가 1억4,675만원의 상금을 벌었습니다. 마지막 경주 닷새 뒤인 7월 16일 퇴역 신고가 접수됐고, 서류상 용도는 '승용마'로 기재됐습니다.
승용마 전환은 이후 승마장이나 체험목장에서 사람을 태우는 용도로 쓰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천행챗은 퇴역 보름 만인 7월 31일, 제주시 구좌읍의 한 말 농장에서 다른 은퇴마 3마리, 흑염소 1마리와 함께 발견됐습니다. 발견 당시 농장에는 훼손된 말 사체와 도축 흔적이 남아 있었고, 냉동고에는 말고기가 보관돼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동물단체 제주비건과 제주행복이네협회는 8월 4일 농장주를 동물보호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살아 있던 말 4마리는 8월 11일 한국마사회가 제주도청과 협력해 구조했습니다. 마사회는 8월 1일 핫라인을 통해 사건을 인지했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는 8월 3~4일 여러 차례 구조를 요청했는데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초기 대응 시점을 두고는 양측 설명이 엇갈립니다.
왜 지금 감사원까지 등장했나
이 사건이 단순 동물학대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한국마사회는 매년 퇴역경주마 가운데 얼마나 많은 말이 승마용으로 다시 쓰이는지를 '승용전환율'이라는 수치로 발표해 왔고, 이 수치는 마사회의 말복지 성과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쓰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지표는 말 소유자가 퇴역 신고서에 용도를 '승용'이라고 적기만 하면 집계됩니다. 실제로 그 말이 승마장에서 훈련받는지, 사람을 태우고 있는지는 별도로 확인하지 않습니다. 제주비건이 개별 말 이력 데이터를 다시 분석한 결과, 마사회가 발표한 2024년 승용전환율 42.96%는 실제로는 42.4%에 가까웠습니다. 격차 자체는 크지 않지만, 검증 없이 신고만으로 채워지는 지표라는 점이 문제로 지목됐습니다.
실제로 제주의 한 목장에는 승용 전환된 퇴역경주마 156마리가 등록돼 있었는데, 지난 4월 현장을 확인한 결과 그 자리에는 말이 단 한 마리도 없었고 경주마 생산용 말만 사육되고 있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제주비건은 이런 사례를 근거로 8월 24일 감사원에 지표 산출 기준과 검증 책임자를 밝히라는 공익감사를 청구했습니다.
농수축산신문은 최근 칼럼에서 다른 각도를 짚었습니다. 마사회는 폭염기 경주마의 야외 노출을 최대 23분 이내로 관리한다고 설명해 왔는데, 문제는 이 촘촘한 관리가 현역 시절에만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상금을 버는 동안은 세심하게 관리되다가 트랙을 떠나면 복지의 사각지대로 밀려난다는 것입니다. 이 칼럼은 마사회 차원의 개선을 넘어 국가 단위의 말 생애복지 이력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 천행챗 통산 성적: 40전, 상금 1억4,675만원 (2023~2026년 7월)
- 퇴역부터 발견까지: 신고일(7월16일) 기준 보름, 마지막 경주일(7월11일) 기준으로는 20일 — 언론마다 '20일 만'과 '2주 만'으로 다르게 쓴 것은 기준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마사회 발표 승용전환율(2024년): 42.96% — 제주비건 재산정 42.4%
- 2020~2024년 민간 이양 퇴역마 5,565마리 중 1,354마리(24.3%)가 소재 확인 없이 '현행화 폐사' 처리
- 2019년 마사회 자체 연구에서 조사 대상 승마시설의 47.6%가 폐사 신고 없이 매립 처리한다고 응답
'현행화 폐사'는 실제 죽음을 확인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말을 시스템상 폐사로 정리하는 행정 절차입니다. 이 비중이 전체 이양 두수의 4분의 1에 가깝다는 것은, 승용전환율이라는 수치 뒤에 추적이 끊긴 말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주 헷갈리는 지점
첫째, '승용마로 등록됐다'는 말을 '안전하게 승마용으로 쓰이고 있다'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이 등록은 소유자의 자진 신고일 뿐, 마사회나 지자체가 현장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천행챗도, 156마리가 등록됐던 유령 목장도 서류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둘째, '말 4마리가 구조됐으니 사건이 마무리됐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구조는 현장에 남아 있던 말들의 목숨을 살린 것이고, 애초에 이런 일이 왜 가능했는지를 설명하는 이력 관리 체계의 허점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말산업육성법에는 모든 말에 대한 보편적 등록·추적 의무 자체가 없다는 점도 이번에 다시 지적되고 있습니다.
나에게 닿는 지점
한국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경마 매출의 일부가 축산 발전과 말산업 육성 예산으로 쓰입니다. 그 예산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 하나가 검증 없이 채워졌다는 의혹은, 경마를 이용하든 안 하든 공공기관 운영의 신뢰성 문제로 이어집니다.
도축장을 운영한 농장주가 말고기 식당을 함께 운영했다는 보도도 나온 만큼, 불법 도축된 고기가 실제로 유통됐는지는 앞으로 수사에서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아직 유통 경로가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가 별도로 적용된 배경이기도 합니다.
지금 확인할 것은 감사원이 공익감사 청구를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마사회가 승용전환율 산출 기준을 어떻게 바꾸는지입니다. 지표 하나가 바뀌는 것보다, 퇴역 이후 말의 소재를 실제로 추적하는 장치가 생기는지가 더 중요한 지점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퇴역 경주마는 원래 어떻게 처리되나요?
말 소유자가 퇴역 신고서에 용도를 승용·번식·도축 등으로 기재하면 마사회 이력에 등록되지만, 신고 이후 실제로 그 용도로 쓰이는지 현장을 확인하는 의무 절차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사회의 승용전환율이 왜 문제가 되나요?
이 수치는 소유자의 자진 신고만으로 집계되는데도 마사회의 말복지 성과지표로 발표돼 왔고, 제주비건 재분석에서 마사회 발표치와 차이가 확인되면서 산출 기준의 신뢰성 자체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처벌받는 사람이 있나요?
농장주는 동물보호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8월 4일 시민단체에 고발된 상태이며, 실제 처벌 여부와 수위는 수사와 재판을 거쳐야 확인되는 만큼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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